“우주의 중심은 지구다.” “연금술을 통해서라면 납을 이용해 금을 만들 수 있다.”

위 두 문장의 참과 거짓을 판명할 수 있는가? 당연히 정답은 둘 다 거짓이다. 현대의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두 문장의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기술이 발달하며 반례들이 발견되고, 과학에 기반한 근거들이 새롭게 조명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말도 안 된다며 비웃는 저 주장들은 과거 몇 세기 동안 당연하게 ‘믿음’의 자리를 지킨 것들이었다. 이처럼 잘못된 믿음이 형성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까마득한 과거부터 사실처럼 포장된 거짓, 그리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여러 믿음과 함께해왔다.

그러나 저 두 사례는 지금부터 말할 것들과는 결이 다른 경우이다. 두 경우 모두 주장한 사람도 진실이라고 믿어 잘못 주장했던 사례들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루머를 생각해보자. 유명인의 거짓 학교폭력을 폭로하는 글부터, 악의적으로 조작된 음성과 사진, 단순히 관심을 받으려 자극적으로 부풀린 정보들까지. 인터넷을 떠도는 현대의 거짓은 더욱더 교활하고 은밀해졌다. 거짓을 판별하던 기술이 거짓을 만드는 자들의 도구가 된 것도 한몫하였다. 눈부시게 발전을 일궈낸 기술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더욱 모호하게 하여, 이제 우리가 믿는 ‘진실’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정보를 함부로 믿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안다. 지겨울 정도로 미디어 리터러시를 배운 우리에게 “정보를 의심하라!”는 경고는 익숙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아직도 사람들은 근거도 없는 글과 사진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일까? 사실 여기에는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대다수의 경우에서 우리는 단지 ‘그래 보이니까’ 그것을 믿는다. 필자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지난 계엄령 사태 때 서울 곳곳에 군이 배치됐다는 이야기, 심지어는 탱크가 시내를 돌아다녔다는 소문이 SNS에 퍼졌었다. 글은 순식간에 널리 공유됐고, 많은 이들이 동조했다. 그렇기에 의심 없이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었다. 믿는다는 건 이처럼 대단한 근거에서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인간의 믿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단순하다. 왜곡된 진실이 더욱 정교해졌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은 더 간편하게 거짓으로 향한다. 사람들은 이제 무엇이 진실인지 찾는 것 대신 믿기 쉬운 것을 택한다. 그리고 인터넷은 이를 너무 쉽게 허락한다.

본론 1: 믿음이란 무엇인가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먼저 알아보자. 사전적인 의미에서 믿음이란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믿음 중에는 완전히 사실에 기반하진 않은 것들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황당한 정보를 접했을 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은연중에 불안해하기도 하니 말이다. 도대체 믿음에는 어떤 특성들이 숨어있길래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걸까?

‘수면자 효과’는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설명하는 심리학 이론이다.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믿기 어려운 출처에서 정보가 제시됐을 때 정보 자체보다 출처가 믿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더 빨리 잊는다. 따라서 시간이 흐르면 출처는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메시지만 남아 ‘믿음직한 정보’였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렇게 SNS를 떠도는 터무니 없는 글 하나, 비전문가가 뱉은 한 문장이 믿음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예컨대 렉카 유튜버를 통해 한 정치인에 관한 부정적 루머가 퍼졌다고 해보자. 초반에 유권자들은 당연히 이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들의 기억에서 출처는 잊히고, 결국 “그 사람 뭔가 있지 않았나”하는 모호한 불신만이 남는다. 실제로 인간은 매우 빈약한 근거만으로도 무언가를 쉽게 믿곤 한다. 문제는 한번 형성된 믿음이 거의 의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믿음이 얼마나 취약한 토대에서 시작됐는지를 자주 간과한다.

반면, 때때로 우리는 너무 논리적이라 잘못된 믿음을 형성하기도 한다. 레온 페스팅거의 ‘인지부조화’ 이론은 개인의 믿음, 태도, 행동이 서로 일치하지 않아 부조화가 발생하는 경우를 설명한다. 부조화 상태에서 인간은 불안과 불편을 느끼고, 셋 중 일부를 바꿈으로써 조화를 만들려 한다. 대표적인 예시가 ‘1달러 vs 20달러 실험’이다. 실험에서 피실험자들은 단순노동을 수행한 후, 다음 참가자에게 노동이 재밌다고 거짓말해주길 요구받는다. 연구자는 수락한 피실험자 중 일부에겐 1달러를, 다른 이들에겐 20달러를 거짓말의 대가로 제공한다. 이후 피실험자들에게 노동이 정말 재밌었는지 물었을 때, 이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아마 읽으며 20달러를 받은 쪽이 긍정적이었으리라 예측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과는 1달러를 받은 집단이 노동을 더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거짓말에 충분한 보상이 주어진 20달러 집단과 달리, 1달러 집단에겐 정당화할 근거가 적어 자신들의 믿음(노동이 지겹다고 느낀 것)과 행동(재밌다고 추천한 것) 사이의 일관성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해, 1달러 집단은 노동이 재밌었다며 자기 자신을 설득해야만 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겪었을 만한 사례도 있다. 구매한 제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우리는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고자 제품의 긍정적인 평가만을 찾아보게 된다. 사실은 ‘별로다’라고 느끼면서도, 이미 산 행동을 되돌릴 순 없기에 ‘괜찮은 제품’이라 믿음으로써 후회를 줄이려는 것이다. 두 경우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는가. 바로 인간은 부조화가 발생하면 대체로 조정하기 쉬운 믿음을 바꾼다는 점이다. 내가 아는 사실과 나의 상황, 행한 행동이 서로 불일치할 때 사람들은 사실을 틀어 믿음을 만들고, 이를 새로이 진실이라 믿는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그렇기에 많은 경우에서 이성은 감정적 합리화를 이기지 못한다.

우리가 어떤 정보를 믿는 이유는 위 문단의 사례처럼 특정한 무언가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굳이 노력을 들이고 싶지 않아서인 경우도 많다. 인간은 인지적 자원을 아끼려는 경향이 있어 복잡한 분석보다는 간편한 결론을 선호한다. ‘인지적 구두쇠’ 이론은 이러한 우리의 특성을 뒷받침해준다. 사람은 지능과 관계없이 생각하거나 문제를 해결할 때 본능적으로 더 간단한 방법을 택하며, 그렇기에 ‘믿기 쉬운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흔히 다수가 믿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간편하게 그 믿음에 편승한다. 이 과정에서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판명 자체가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이 바로 인지적 구두쇠의 대표적인 예이다. “중국 제품은 모두 품질이 안 좋다.”, 이 문장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는가? 세간의 평가와 자신의 구매 경험을 고려하며,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러나 ‘모두’라는 단어에 집중해보자. 오늘날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고속철도, 드론 등은 세계적인 무대에서 기술력을 인정받는 분야이다. ‘made in China=낮은 품질의 제품’이라는 공식이 틀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여전히 모든 중국산을 경계한다. 견고하게 고정된 믿음은 어떠한 사실을 바라보려 하지도 않게 만든다.

이처럼 믿음은 그리 객관적인 것이 아니다. 믿음은 우리가 잘못 만든 허상이기도, 정당화 요소이기도, 우리를 편리하게 하는 기제이기도 하다. 많은 경우에서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인지하지도 못한 채로 ‘사실’ 그 자체와 동떨어져 작용한다.

본론 2: 해체되는 진실

사람들의 정보 접근성이 높아지고 판단 능력이 발달하며, 이제 엉성한 거짓말은 더 이상 우리를 속이지 못한다. 비행기를 탈 때 신발을 벗어야 한다는 유머를 우리는 그냥 웃어넘기고, 말도 안 되는 혜택이나 특가를 보면 과대광고임을 어렵지 않게 눈치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잘못된 믿음이 넘쳐나는 걸까? 서론에서 언급한 ‘왜곡된 진실이 더 정교해졌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우리는 이제 만능 AI 시대를 살고 있다. 오늘날의 AI는 간단한 자료조사를 수행할 뿐 아니라 복잡한 이미지나 영상, 목소리를 실제와 거의 구분되지 않게 생성한다. ‘실제와 거의 구분되지 않게’.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미국의 한 소비자 조사 플랫폼이 올해 초 2,000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응답자의 76%가 AI 생성 이미지를 실제 이미지로 오인했다. 손가락을 여섯 개로 그리며 자신이 거짓임을 알려주던 시기는 옛적에 지났다. 이처럼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터넷상에서는 믿음의 기반이 될 진실 자체가 이미 모호해졌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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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페이스북과 X(구 트위터)에 올라온 ‘펜타곤 폭발’ 게시글은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 세상까지 발칵 뒤집었다. “워싱턴 D.C.의 펜타곤(국방부 청사) 근처에서 대규모 폭발이 있었다”라는 짧은 문장과 함께 올라온 검은 연기 사진은 뉴스와 공식 계정에서도 공유되기 시작하며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 사건으로 뉴욕증시는 하락했으며, 안전 자산으로 여겨지는 미 국채와 금 가격이 빠르게 치솟았다. 그러나 추후 국방부의 발표는 충격적이었다. 해당 사진이 AI가 생성한 가짜 이미지였다는 것이다. 왼쪽이 해당 사진이다. 과연 저 글을 SNS에서 접했다면, 당신은 바로 알아볼 수 있었겠는가? 사진뿐만 아니다. 웹툰 작가 이말년으로 알려진 유튜버 침착맨은 최근 AI 불법 도박 광고에 얼굴과 목소리가 무단으로 합성된 바 있다. 문제는 이 또한 단번에 알아차리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이제 기술은 우리가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는 진위를 가려내기 어려운 단계에 이르렀다.

이미지 외에도 기술은 뜻밖의 방식으로 믿음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소셜미디어의 추천 알고리즘은 진실에 관한 판단을 은밀히 조종해왔다. 사용자의 취향과 관심사를 분석하여 정보 접근의 효율성을 높여준 알고리즘. 그러나 이런 효율성의 이면에는 분명한 그림자가 존재한다. 알고리즘은 기존 신념을 강화하는 콘텐츠만을 제공하여 우리를 일명 ‘정보 감옥’에 가둔다. 그 결과,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부합하는 정보만 편식하는 확증편향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기술 자체가 우리를 편향된 사고 속에 가둬버린다. 그리고 그 감옥 안에서 우리는 무엇이 진실인지에 관한 잘못된 믿음을 형성하게 된다.

정보의 양은 늘었으나, 그 진위를 가려내기란 어느 때보다 어려워졌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진실은 흐려지고, 우리는 여전히 그 경계를 분별하지 못한다. 오늘 본 그 글이 진실이었다고 당신은 확신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