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나온 「데블스 플랜」 시리즈를 재밌게 봤다. 서바이벌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치열한 두뇌 싸움과 처절한 생존 본능, 승리의 환희를 간접 경험하는 순간을 즐긴다. 데블스 플랜을 보며 그랬다. 강자는 주도권을 가지고 플레이하는데, 약자는 여기저기 붙어서 살아남기 바쁘다. 최종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연합과 배신이 끊이지 않는다. 개인의 이익과 공동의 목표 중 어떤 것을 관철해야 하는가에 대한 딜레마 또한 우리에게 재미를 주는 요소다. 생각해 보면 이런 딜레마는 꼭 강자들에게 찾아온다. 약자들은 생존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의 특징 중 하나가 강자는 끝까지 강자이고, 약자는 끝까지 약자라는 점이다. 그 끝에 패권을 향한 마지막 결승은 강자 대 강자의 구도로 이어진다.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모습은 현실 정치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강대국이 강대국과 맞붙기 위해, 패권국이 패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우위를 이용하여 국제사회를 이끌어 나간다. 이권을 쟁취하기 위해 수시로 동맹을 맺지만, 이해관계에 따라 가차 없이 동맹을 파기한다.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현시대에 연합과 견제를 반복하는, 다시 말해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는 국제 정치의 현실을 보여준다.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기술 싸움도 대단히 치열하고, 상대방의 전략을 간파하여 여론을 형성하고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것도 오늘날 국가 간 전략적 움직임의 특징이다. 이에 상대적 약소국들은 강대국 사이에 끼어서 전략적으로 활용되지만, 직접적인 패권 싸움에 끼어들기가 매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운 세상이다. 개개인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사회를 관통하는 말이다. 「데블스 플랜」은 냉정하게 미시적인 개인부터 거시적인 사회까지 꿰뚫는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약자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처음에는 강자가 주도하는 질서 속에 편입된다. 그것이 약자 스스로에게도 이득이 될 것이라고 믿으니까. 강자가 모임을 만들면 참석하고, 뭘 하자고 하면 저항 없이 협력한다. 그러나 슬슬 의문이 들기 시작할 때쯤, 소심한 반항을 시작으로 나중에는 약자끼리 뭉치기도 한다. 서로 연대하고, 힘을 합친다. 설령 모은 힘이 강자의 힘 하나에도 못 미칠지언정. 그럼에도 그들의 힘에 강자들은 주목하고 경계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다. 모이면 힘은 강력해진다. 이것이 현재 국제사회를 나타내는 주요한 흐름이다. 이제는 단순히 ‘우리 vs 너희’의 구도가 아니다. 가끔은 우리가 될 수도, 가끔은 너희가 될 수도 있는 세상이다.
이 글은 첫째로 우리가 마주한 21세기 국제 질서의 특징에 대해 분석하고자 한다. 과거 냉전 시대와는 질적으로 달라진 시대적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위상과 역할의 차이가 존재하는 중견국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둘째로 패권국이 자신들이 가진 패권을 통해 국제 질서를 어떻게 만들고 유지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경제력과 군사력과 같은 전통적인 힘의 논리를 넘어서 자신들의 질서를 ‘정당화’하고,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전략을 알아보고자 한다. 그 속엔 ‘국제기구’가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는 탄핵 정국을 겪고, 새로운 시대를 만났다. 이제 국제 무대는 단순하게 “모두 모여서 지구촌 문제를 해결해봅시다!”라고 외치는 시대가 아니다. 세분화되고 분절됐다. 이제는 전통적 외교 방식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능동적인 전략과 그 속에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지지 않는 미래’를 위한 준비를 강조하고자 한다.
신냉전
21세기의 1/4이 지나고 있다. 지금까지의 21세기를 설명한다면 단연 ‘미국과 중국’이다. 이 두 국가는 국제 관계의 중심축이자 각기 다른 이념을 위시하는 대표 주자들이다. 우리는 이 둘의 관계를 ‘신(新)냉전’이라고 규정한다. 우리가 아는 20세기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기를 잇는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다만 과거의 냉전이 이념적으로 양분된 군사적 대치였다면, 현재의 신냉전은 비교적 단일화된 글로벌 시스템 내에서 벌어지는 기술 및 경제적 경쟁이라는 점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다. 세부적으로 당사국과 주변국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그 차이를 살펴보겠다.
과거 미국과 소련은 경제적 상호의존이 거의 없던 상태였다. 반면 미국과 중국은 정치적 긴장감이 엄청났던 그 시기에도 무역량이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2018년 연간 6,600억 달러에 달하는 미중 교역액에 비해 미소 교역액은 1986년 연간 20억 달러에 불과했다. 물가 상승률 등을 고려해도 현저하게 차이 나는 수치이다. 이는 이른바 ‘적대적 상호의존(antagonistic interdependence)’이라는 역설적 표현으로 설명된다. 당사국들은 이에 ‘디리스킹(de-risking)’이라는 대안을 사용하고 있다. 완전한 경제 분리를 의미하는 ‘디커플링(decoupling)’이 비현실적이라는 인식을 전제하고,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핵심 부문에서 의존성을 선별적으로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첨단 반도체,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적 요소에 대한 공급망이 대표적인 예이다. 결론적으로 이 경쟁은 상대국을 봉쇄하거나 붕괴시키는 전략이 아니다. 글로벌 시스템에서의 지배적 위치 선점, 시스템 재편, 제도적 표준 수립이 목표다.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동시에 상호 파멸을 피하기 위해 협력과 관리가 필요한 복잡한 게임으로 보인다.
강대국 경쟁의 변혁은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의 역할과 위상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다. 냉전 시기 ‘제3세계’는 어느 한 쪽의 편에 서지 않는, 동맹이 없는 국가들이었다. 이들은 강대국 경쟁 속에서 대부분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본질적으로 미국과 소련 양국의 세력 확장을 위한 전략적 대상에 불과했다. 그러나 신냉전하에서는 중견국들이 핵심 행위자로 급부상했다. 군사력과 같은 하드 파워가 아니라 양국과 맺고 있는 관계에서 그 힘이 나온다. 한국이나 일본의 사례를 보면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면서도 최대 교역 상대국은 중국이다. 쉽게 말해서 완전한 동맹이 불가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들은 강대국 정치의 일방적 수용자에서 벗어나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능동적 전략을 구사하고자 노력한다. 개별적 국가 전략으로는 미미해 보이더라도 다자적인 지역적 컨센서스가 만들어진다면 미중 경쟁 환경을 규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볼모가 아니다.
국제기구
국가의 경쟁력은 아주 고전적인 ‘힘’으로부터 비롯된다. 흔히 하드 파워라고 불리는 군사력과 경제력은 국가가 가진 힘을 정량적으로 보여주는 강력한 수치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압도적 군사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 미군을 주둔시키며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브레턴우즈 체제’를 도입하며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만들었다. 이처럼 하드 파워를 이용하여 국제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 패권국의 특징이다. 다만 이런 하드 파워를 통한 강압적인 통치는 지배력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언젠가는 그 패권국의 방식에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질서에 자발적으로 동의하게끔 하는 소프트 파워라는 개념은 여기서 생겨났다. 우리가 좋아하는 마블 영화, 슈퍼 히어로 영화는 미국이 세계를 지킨다는 이념적 가치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러한 문화적 매력이 결국 저항감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패권국은 자신들의 패권을 어떻게 유지하고 행사할지뿐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정당화”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한다. 앞서 소개한 소프트 파워도 정당화의 일례로 봐야 한다. 정당화의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로 ‘국제기구’를 들 수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의 주도하에 UN이 창설됐다. 승전국끼리의 패권 유지를 위함이었다. 다만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하지 않은가? 초강대국들은 크게 세 가지 논리로 자신들을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공공재 제공의 원리: “누군가는 해야 한다.”, “무질서와 혼란 → 안정 상태”
모두에게 이로운 길: “초강대국뿐 아니라 모두가 좋을 인류 보편의 가치 공유”
예측 가능성 증대: “규칙이 있는 것이 불확실성을 줄여준다.”
다만 이렇게 규칙과 질서를 만든 과정에 숙의의 과정은 없었다. 말 그대로 잇속을 챙기기 위한 정당화와 명분 따위였다. 규칙의 효력은 미미했다. UN의 결의안과 각종 국제법이 대단한 효과가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실제로 강대국들은 때때로 이를 거부하기도 한다. 일부러 그 효력을 약하게 만들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승전국들이 만든 UN이 그들의 의사에 반하는 막강한 독립적 기구일 리가 없다. 또한 국제법을 강제적으로 집행할 기구도 없다. 모든 국가는 평등한 주체이기 때문에 국가 주권을 해치는 강압적 기구가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렵다. 미국은 UN을 창설하여 어떻게 이용하고 싶었던 것일까? UN의 결의를 통해 ‘국제 사회의 공동 대응’이라는 명분을 얻게 되고, 자국의 외교적 부담을 덜어낼 수 있다. 패권국으로서 책무를 다하는 듯하면서도, 실질적인 힘은 비축하려는 것이다.
패권 유지를 위해 국제기구를 활용한 또 다른 예시로 영국을 들 수 있다. 1815년부터 시작된 ‘유럽 협조 체제(Concert of Europe)’는 현대 국제기구의 원시적 형태로 볼 수 있으며, 최초의 다자 안보 협력 체제로 인정받고 있다. 이 체제의 핵심은 ‘세력 균형’이었다. 나폴레옹 시대처럼 어느 한 국가가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안전 장치였고, 문제가 발생하면 유럽의 주요 강대국들이 모여 해결책을 강구했다. 그러나 영국은 이 체제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이미 패권국이었고, 체제 수립 이후에도 패권을 굳건히 유지했다. 영국의 역할을 두 가지 정도로 나누면 이해된다. 첫째, 해상에서만큼은 압도적인 해군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바다를 지배하는 독점적인 ‘패권국’이었다. 강력한 하드 파워를 통해 유럽 대륙 이외의 권역에 영어와 자국 문화를 전파하는 데 주력했다. 둘째, 유럽 대륙에서 그들은 ‘조정자’였다. 유럽 대륙의 특정 국가가 강력해지면 자신들이 우위를 가진 해상 무역로가 위협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해상과 대륙으로 나누어 상황에 맞게 힘을 전략적으로 운용하여 패권을 행사하고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패권국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힘과 제도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한다는 공통 원리를 따른다. 순수한 선의나 보편적 이익을 위해서라기보다, 타 국가들의 자발적 참여를 끌어낼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제도를 통한 정당성 확보가 예전과 다르게 많이 옅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기도 쉽지 않아진 상황 속에서 능동적 행위자로서의 중견국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으로 이재명 대표가 당선됐다. 대통령 인수위원회도 없이 곧바로 선출되자마자 임기를 시작했다. 경제, 외교, 군사 등 각 분야에 빠른 적응력을 보여줘야 함과 동시에 무너진 시스템을 회복해야 하는 임무를 맞닥뜨렸다. 당선된 지 채 열흘도 되지 않은 이 대통령에게 외교 능력을 시험하는 순간이 다가왔는데, 바로 정상회의 참석 여부였다. 이때 예상치 못한 선택을 보여주었다. 초청받은 G7 회의와 NATO 회의에 대해, 전자는 참석하고 후자는 불참한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NATO 회의 참석은 이미 관행처럼 굳어져 왔고,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대통령에게는 여러 서방의 정상들을 만날 좋은 기회였기에 의외의 행보처럼 보였다. 이 결정은 ‘가치 외교’를 중시했던 전임자와 달리 ‘국익 중심’을 강조하는 신호탄이자 대내외적인 선언으로 해석된다. G7만으로 충분히 국익을 확보할 수 있고, 어엿한 세계 대국으로서 책임을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경제 현안이 주요 의제인 G7과 달리 군사 협의가 중심인 NATO에 참여하는 것이 중국과의 외교에 불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