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은 중산층과 청년들의 절망을 비본질적인 곳으로 돌리게 함으로써 진정한 사회 변혁을 가로막는다. 20세기 초의 파시즘은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아 “열등한 인종”을 배제함으로써 사유재산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고 선전했다. 그렇게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착취 문제를 외부로 돌렸고, 국민의 다수가 그것을 받아들였다.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 미켈 볼트 라스무센,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中
최근 극우 단체들이 남발하는 마법의 단어가 있다. “너 화교지?” 이들은 유재석도, 아이유도, <중증외상센터> 원작자도 화교라고 주장한다. 이 정도면 ‘만물화교설’이 제기될 정도다. 인터넷에서는 일명 ‘화짱조’, 그러니까 ‘화교, 짱X, 조선족’을 합친 단어가 혐오 표현으로 사용된다. 이들은 황당한 이유를 대며 자신이 비난하고 싶은 상대가 화교임을 주장한다. 최근 인기 유튜버 해쭈는 설 연휴에 가족이 모여 중국 음식을 먹고, 세뱃돈을 빨간 봉투에 넣어서 주었다는 이유로 화교라는 의혹에 시달렸다. 이 의혹으로 엄청난 악플 테러를 당한 그는 “외할머니의 아버지가 조문환(독립운동가) 선생님”이라며, “이렇게까지 설명하지 않으면 계속 거짓말을 믿으면서 악플을 달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해명 영상으로 ‘화교 의혹’을 벗었지만, 자막을 통해 ‘이걸 왜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이며 당혹스러운 심경을 드러냈다.
이들의 혐오 선동은 온라인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지난 4월 17일, 극우 단체 '자유대학' 회원들은 건대 양꼬치거리에 난입해 “짱X, 북괴, 빨갱이들 대한민국에서 꺼져라” 등의 노래를 부르며 혐중 집회를 벌였다. 이날 대학교 점퍼을 입고 태극기를 든 청년들은 주택가 한복판에서 당당하게 혐오 발언을 내뱉으며 악의적인 마찰을 일으켰다. 7월 4일에는 대구 TKYC(TK청년우파커뮤니티)가 대구화교초등학교 정문에 모여, 아이들이 공부하는 공간 앞에서 동일한 구호를 외쳤다. 대구화교초등학교는 중국과 아무 관계 없는 대만 정부가 지원하는 교육기관이었지만, 이들에게 사실관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국 정부를 향한 적대감은 그저 혐오와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12·3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지지자들은 혐중·반중 음모론과 가짜뉴스를 의도적으로 확산시켜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이들은 민주당의 배후에 중국공산당이 있고, 도널드 트럼프는 공산당을 멸망시키기 위해 대통령이 된 사람이므로 취임하자마자 부정선거를 밝혀내고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할 것이라는 음모론을 퍼뜨렸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인들이 음모론을 부추기고 ‘적극적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이다.
윤종석 서울시립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유튜브에서 혐중 음모론은 몇십만, 몇백만 조회수를 올리는 산업이 되었다”면서 “정치 세력이 이것을 활용해 국면 전환을 시도하면서, 미-중 패권 경쟁과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인한 국제질서의 변화와도 교묘하게 연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성조기를 들고,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와 비슷한 빨간 모자를 쓴다. 손에 쥔 ‘스톱 더 스틸(Stop the Steal·도둑질을 멈추라)’이라는 팻말은 2020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던 사람들이 부정선거를 주장한 구호였다.
트럼프의 가장 중요한 슬로건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미국을 다시 ‘백인, 이성애자, 태어난 그대로의 남성’의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인종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선언이다. 동시에 외국인과 소수자를 배제함으로써 사회경제적 위축이 마술처럼 해결된다는 ‘파시스트적 환상’의 재탄생이기도 하다. 외국인 혐오주의에서 쇠퇴의 원인은 ‘나약한 정치인을 이용해먹는 외국인들’이므로, ‘불법 이민자 추방’은 트럼프의 핵심 동력이 된다.
트럼프는 취임과 동시에 남부 국경 지역에 군대를 동원해서 이민자 유입을 차단했고, 서류 미비 이민자를 체포·구금·추방했다. 현재 이민세관단속국은 체포 과정 영상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전년보다 2배가 넘는 인원(하루 평균 650명)을 체포하고 있다. 체포된 사람은 늘었지만 추방하기는 어려워지면서 임시 구금시설에 수용되는 이민자가 폭증했고, 4만 1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구금시설 120곳은 이미 수용 인원을 초과했다. 이에 따라 넘쳐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영리 목적의 민간 구금시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들 기업은 ‘이민자 단속’을 돈벌이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지오그룹은 전자발찌와 추적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정부의 이민자 체포에 협조함으로써 연간 3억 5000만 달러(약 4886억원)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미국시민자유연맹은 “민간 구금시설은 이민자를 범죄자처럼 대하는, 인권침해로 얼룩진 곳”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최근 미국 남부 플로리다 습지에 설치한 불법 이민자 억류 시설로 큰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일명 '악어 알카트래즈'라고 불리는 이 시설은 악어와 비단뱀이 우글거리는 늪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과거 악명 높았던 섬 감옥 ‘알카트래즈’를 연상시킨다. 트럼프는 이곳을 직접 방문해 “악어에게서 도망치려면 일직선으로 달리지 말고 지그재그로 달려야 한다. 그럼 생존 확률이 1% 정도 올라간다.”라며 이민자들을 조롱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는 6월에 벌어진 3주간의 이민자 단속 기간 동안 1천 6백 명 이상이 체포됐다. 독립기념일(7월 4일)은 미국의 최대 기념일이지만, 로스앤젤레스시는 올해 독립기념일 행사를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이민자들이 운영하는 상점 곳곳이 문을 닫았고, 유명한 패션 거리인 샌티 앨리 역시 유동 인구가 절반 가까이로 줄었다. 이곳에 위치한 100여 개의 상점 중 90%가량을 이민자들이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이 에어리어 의회 경제연구소의 연구 책임자인 애비 레이즈는 “이들이 모두 추방되면 캘리포니아주 GDP가 2천 800억 달러 가까이 줄어들 것이다. 이는 캘리포니아 GDP의 9%에 해당하는, 네바다주나 오리건주 전체 GDP보다 큰 규모”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다양한 국가에서 온 이민자들이 세운, ‘이민자의 나라’다. 17세기 초 청교도인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넌 이후로, 아메리카 대륙은 희망을 품고 도착한 사람들의 터전이 됐다. 각기 다른 배경과 사연을 가진 이들은 서로의 문화와 신념을 나누며 오늘날의 미국을 완성했다. 하지만 오늘날 트럼프 정부는 공포 분위기를 형성해 합법적 신분을 가진 이민자들도 일찍 출국하도록 등을 떠밀고, 지역 사회를 위해 헌신해온 이들을 ‘위협적인 존재’이자 ‘추방 대상’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언어와 피부색이 달라도 누구나 공정한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빛나던 미국은, 가장 중요한 가치를 스스로 허물어버렸다.
칼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라는 저서에서 정치공동체의 통일성을 위해서는 ‘적을 선포하는 행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라는 정치공동체는 반드시 ‘적에 대항하는 우리’의 형태로서만 가능하다는 의미다. ‘우리’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임의로 규정된 ‘그들’이 필요하며, ‘그들’ 없이 그 자체로 완성되는 동질적인 집단은 없다. 따라서 ‘우리’의 통일성은 애초부터 허구적인 것이자 불가능한 것이며, 공동체의 본질은 ‘이미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뒤늦게 재구성되는’ 것이다.
문제는 공동체를 구성시킨 명분이나 가치가 흐려지고, 구성원 간의 결속이 취약해질수록 ‘공동체의 본질’을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더욱 극단적인 양상을 띠게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와 ‘그들’ 사이의 경계는 그 시작이 우연적이었다고 해도, ‘우리’에 의해 절대적이고 유일한 것으로 규정되는 순간 폭력적인 이면을 노출시킨다. 오늘날 이주민,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을 억압하고 추방하여 원래의 민족-국가공동체를 재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전세계 국수주의 정당들은 모두 이와 같은 논리에 근거해 행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파시즘은 중산층과 청년들의 절망을 비본질적인 곳으로 돌리게 함으로써 진정한 사회 변혁을 가로막는다. 20세기 초의 파시즘은 심각한 경제위기 속에서 “열등한 인종”을 배제함으로써 사유재산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고 선전했다. 무솔리니와 히틀러가 그러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착취 문제를 외부로 돌렸고, 국민의 다수가 그것을 받아들이며 끔찍한 사건들이 벌어졌다.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자본주의에 내재된 문제들을 드러나게 만들었지만, 각국 정부들은 시장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경제 논리만을 계속 따라왔다. 그 결과 ‘양적인 성장 지표’ 뒤에 숨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파탄날 지경에 이르렀다. 파시스트들은 이러한 위기의 원인을 세상의 소수자들에게 돌림으로써, ‘좋았던 과거’를 되돌릴 수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입지를 다시 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