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인간?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서로를 지배해왔다. 이는 고대 노예제나 중세의 신분제, 근대의 식민지 지배처럼 권력과 폭력을 기반으로 한 명백한 지배 구조로서 사회에 존재했다. 이러한 지배 권력 관계는 제도화되고 공고화되었으며, 지배-피지배의 경계가 뚜렷한 가시적인 체계로 기능하고 있었다. 그러나 계몽주의와 인도주의적 혁명을 거치면서 인간의 보편적 자유와 존엄이 강조되며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고, 개인을 이성과 감정을 지닌 자율적인 존재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인간 사이의 가시적인 지배 관계는 점차 과거의 유물로 남고 자유로운 개인과 그의 선택이 강조되는 사회가 형성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자유로운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겉으로 드러나는 계층 구조가 사라졌다고 해서 인간 사이의 지배 관계 자체가 종식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심리적인 위계 관계와 권력 구조에 얽매여 있다. 이는 물리적이고 제도적이지 않지만, 오히려 훨씬 더 정교하고 은밀하여 알아차리기도 어렵다.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얘기야~”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한 번쯤 비슷한 조언을 마주한다. 이는 주로 친밀한 관계 속에서 주어지고 걱정과 도움이라는 긍정적 언어로 포장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상대를 통제하고, 내 입맛대로 맞추고자 하는 교묘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
조언과 걱정은 때때로 우리를 조종하고 지배한다. 이러한 심리적 지배와 관련해 현대에서 주목받는 용어가 바로 ‘가스라이팅’이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와 상황을 조작해 혼란과 자기 의심을 유발하고, 현실 판단력을 떨어뜨리는 심리적 학대’를 뜻한다. 가스라이팅은 신체적 폭력이나 언어적 모욕 없이도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며, 나아가 자신이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게 만든다. 이 문제가 특히 심각한 이유는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도 가스라이팅은 자연스럽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연인이 서로에게, 상사가 부하에게 행하는 조언, 걱정, 교육이 실제로는 지배와 통제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다음은 한국 데이트폭력 연구소에서 제시한 ‘가스라이팅 자가진단지’이다. 자신과 애정 관계에 있는 사람 한 명을 떠올려보고, 간단한 설문을 통해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가스라이팅과 근접해 있는지 파악해 보자.
연구소에서는 위 6가지 항목 중 한 가지만 해당하더라도 가스라이팅을 의심해 볼 것을 권고하고 있다. 아마 한 가지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정도는 다르지만, 우리가 한 번쯤은 타인의 통제와 지배, 가스라이팅의 위험 아래에 놓인 경험이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점점 더 비가시적이고 심리적인 권력관계에 종속되고, 보이지 않는 권력이 서로를 지배하는 교묘하고 위험한 환경 속에 놓이고 있다. 우리가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이러한 심리적 지배 관계를 인지하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개인의 내면으로부터의 새로운 해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랑이란 이름의 협박